ears

작업할 때 들으면 좋은 목소리 #1, Judy Garland (주디 갈란드)

Youngeun Jung 2019. 12. 23. 04:30

곧 폐쇄 예정인 내 네이버 블로그 속에 발견한 게시글.

버리기 너무 아까워 여기다 수정을 거쳐 재포스팅함.

 

  랩을 제외하고 딱히 가리는 장르 없이 다 잘 듣고 있지만, 작업할 때만큼은 특정 부류의 음악을 듣지 않으면 어딘가가 불편하다. 지금 주로 하는 작업 특성상 시끄러운 요새 음악을 들으면 집중이 되지 않는데, 이럴 땐 복고풍 음악을 들어주면 작업에 막힘이 없다.

  현재까지도 미디어에서 다루고 있는 80~90년대의 복고가 아니라, 우리의 할머니 할아버지 적, 그를 넘어서 증조할머니 할아버지 적 노래를 들어야 편히 작업할 수 있게 되는 것 같다. 우리가 익히 아는 할리우드 뮤지컬 영화 전성기 시절의 노래들과 그 노래들의 원본 버전의 노래들은 정말.... 너무 좋다. 좋다는 말 외에 다른 형용사가 필요 없다ㅋㅋㅋㅋ

  그 시절 가수들이야 아주 많지만,그중에서도 내가 가장 많이 듣고 가장 많이 사랑하는 가수이자 여배우에 대해 꼭 포스팅해야겠다는 생각을 세 시간 전쯤에 했다.

 

그래서 오늘 포스팅의 주제는:

 

 

이 분이다 (출처 Wikipedia)

 

 

  저분을 대체하거나 버금가는 목소리를 가진 가수들은 없는 것 같다.

  그냥 목소리만 들으면 다른 사람이 아닌 무조건 주디 갈란드다. 초등학교 때 나보다 학구열 높으셨던 엄마가 사줬던 인명사전은 참 흥미로웠던 걸로 기억한다. 1000년대부터 1900년대 위인들을 세기별로, 거기서 다시 알파벳 순으로 정리해놓고 간단한 역사가 서술되었던 그 책은 나에게 Judy Garland 주디 갈란드(이하 갈란드)라는 스타를 알게 해주었다. 내 기억에 갈란드는 오른쪽 페이지에, 클라크 게이블은 왼쪽 페이지에 아주 멋진 사진과 함께 대문짝만하게 쓰여 있었다. 그렇게 내 첫사랑은 당시 초딩 감성에 맞지 않게 클라크 게이블이 되었고 (엄밀히 따지면 스칼렛 오하라를 가볍게 들고 있던 레트 버틀러 젠장^___^), 그 페이지만 마르고 닳도록 봤던 추억이 아주 생생하다.

 

  바로 오른쪽에 노래를 부르는 모습의 청초한 소녀가 바로 그 주디 갈란드일 줄은 꿈에도 모른 채.

 

대략 이런 모습. (출처 Pinterest)

술과 마약 문제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영화와 콘서트에서 슈퍼 스타였다.
_『밀레니엄 인물 1000 中』

  저렇게 예쁘고 순수한 소녀가 술과 마약이라니. 어린 눈에 좀 충격적이어서 그랬을진 몰라도, 십수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녀의 이름과 얼굴을 생생히 기억할 수 있었다. 그리고 바로 작년 여름, 어린 동생에게 보여줄 뮤지컬 영화를 찾다가 다시 그녀를 보게 되었다. 스크린 속에서 춤추고 노래 부르는 소녀 갈란드는 어릴 적 내 기억 속의 그 기억처럼 참 고왔다. 특히 목소리가 정말 아름다웠다.

 


생애와 함께한 노래들

 

  갈란드의 가족들은 보드빌 공연을 하던 배우였고, 그녀도 가족들을 따라 자연스레 춤과 노래를 익힐 수 있었다. 그녀가 어릴 적에는 언니들과 '검 시스터스'라는 이름의 걸그룹(?)으로 활동했었고, 그녀가 14세가 되었을 때는 어머니의 치맛바람으로 MGM과 계약을 하게 되었다.

  그때 갈란드는 MGM이 자신의 인생을 망치러 온 구원자가 될 줄이나 알았을까? 갈란드의 어머니도 배우였으나, 그다지 빛을 발하지 못하고 보드빌 바닥을 전전하는 신세였다. 자신의 딸은 본인과 같은 전철을 밟지 않길 바란 마음에 갈란드를 스타로 만들기 위해 여러모로 굉장한 노력을 했다고 한다. 그 노력이 좋은 쪽으로 갔으면 참 좋았을 텐데.

  어머니는 갈란드를 영화사 관계자들에게 성 접대를 하도록 할 정도로 딸아이의 성공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했다. 이후 성인이 된 갈란드는 어머니와 연을 끊어버렸다. 결국, 14살의 어린 나이에 MGM과 계약 체결을 하게 되었다.

 

 

 

 


  특히 첫 번째 동영상<Zing! Went the Strings of my Heart>는 갈란드의 준띵곡 정도 된다. <Over The Rainbow>가 넘사벽이고, 그 아래 인간계(?)에서 탑 5위 안에 드는 곡 정도의 인지도를 가지고 있다.

  그럼 이 시점에서 진짜 명곡인 우리가 아는 그 곡, 바로 그 곡을 들어보자.

 

정말 장난이 아니다.

  프랭크 시나트라, 바브라 스트라이센스 등 명가수들이 불러도 원곡을 따라올 수 없게 만드는 원곡. 이 이후로 영화 (마이클 잭슨과 다이애나 로스 주연의 망작 '오즈(1978)'를 제외하고.)브로드웨이에서도, 스크린에서도 이건 이렇다 할 흥행을 거둔 리바이벌 작을 볼 수 없게 되었으며 전설로 박제되어버렸다.

  이 영화는 AFI 미국 영화연구소 선정 위대한 뮤지컬 3위, 전체 100대 영화 중 6위에 오르고, 갈란드는 아카데미 어워드에서 특별상(겨우?)을 받으며 엄청난 인기를 누리게 되었다. 아름답고 훈훈한 이야기와는 다르게, 촬영 현장은 이야기만큼 그리 밝지는 않았다. 동료 배우들은 촬영장에서 가장 어렸던 갈란드를 함부로 대했고, 폭언과 폭행을 서슴지 않았다. 영화 속 귀엽기만 하던 그 난쟁이들은 갈란드가 입고 있던 치마에 들어가며 성추행을 일삼기도 했다. (말년에 토크쇼에서 이 일을 웃으며 농담하듯 말했으나, 촬영 당시에는 얼마나 수치스러웠을지 상상된다)

  영화 속도로 시의 좋은 친구들인 사자, 허수아비, 로봇, 글린다의 모습과 꽤 괴리가 있기에 영화를 편한 마음으로 본 적이 한 번도 없다. 또한 영화 촬영 관계자들은 밤낮을 쉬지 않고 촬영에 임하며 피곤함에 절어 있던 갈란드에 메스암페타민을 투약하여 깨어있게 만들었고, 혹은 수면제를 먹여 강제로 잠들게 하는 등 17살 소녀를 그렇게 혹사했다. 이 일은 훗날 그녀가 약물 중독에 빠진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이렇게 빛과 그림자를 동시에 안겨다 준 <오즈의 마법사> 이후로 그녀는 여러 영화에 출연하며 여러 넘버를 명곡으로 탄생시키며 본격적으로 MGM의 노예가 되어 수십편의 영화에 출연하게 된다.

 

 

 

  진 켈리의 <Singing In The Rain (사랑은 비를 타고, 1952)> 속 동명의 곡은 훨씬 이전에 갈랜드에 의해서 불려졌다!

 

 

 진켈리의 무려 신인 시절. 이 때 주디가 오조오억배는 잘나갔었다

 

재즈 들어본 사람은 아는 그 노래,

 

 

  또한 갈란드는 그녀의 소울메이트, 영혼의 단짝인 Mickey Rooney 와 수십편의 영화에 함께 커플로 출연해 많은 인기를 누렸다. 미키 루니는 갈란드가 약물, 알콜 중독과 결혼과 이혼의 반복으로 힘들어 할 때 옆에서 지탱해주던 좋은 친구였다.

 

 

Judy Garland & Mickey Rooney 익숙한 곡들 메들리. 나이가 들어서도 케미가 좋으셔잉

 

 

  십수 편의 영화를 찍어내듯 출연하며 자신을 혹사시켰던 갈란드는 그녀의 두 번 째 명작 <Meet Me In St. Louis(세인트루이스에서 만나요,1944)> 에서 열연하였고, 이 영화는 후에 AFI 미국 영화연구소 선정 위대한 뮤지컬 10위에 오르게 된다. 갈란드는 본 영화의 감독인 빈센트 미넬리와 결혼하여 딸 라이자 미넬리를 낳았다. 빈센트는 지금까지도 띵감독으로 이름이 남아있을 만큼 대단한 재능을 가진 젊은 감독이었고, 아빠와 엄마의 재능과 엄마의 두 눈을 쏙 빼닮은 라이자 미넬리는 영화 <졸업(1967)> 과 <카바레(1972)>에 출연하여 실력 있는 여배우로 성장하였다.

 

 

 

 맨 처음 대사가 압권인

 

 

  한번쯤 들어 본 캐롤. 이 곡은 주디 갈란드가 오리지널이었다.

 

  하여간 이 영화 덕에 남편도 만나고 가정도 꾸리며 행복하게 살 줄 알았는데, 남편의 동성애 행각이 발각되어 둘은 결국 이혼을 하게 되었다. 주디는 이 이후 여러 번의 결혼과 이혼을 반복하게 된다. 어머니에게도, 남편에게도 사랑을 받지 못한 그녀는 끊임없이 낮은 자존감과 애정 결핍에 시달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진 켈리, 프레드 아스테어와 호흡을 맞추는 등 꾸준히 MGM의 영화에 출연하며 그 명성을 이어갔지만, 계속되는 약물남용과 알콜중독으로 잦은 자살소동까지 벌였으며, 더는 통제를 할 수 없다고 판단한 MGM은 그녀를 퇴출하며 영원히 작별 인사를 하게 된다.

 


 

  이후 그녀는 드디어... 드디어!!!!! MGM이 아닌 Warner Bros 워너브라더스에서 영화에 출연하게 됐는데, 이는 갈란드의 세번째 명작, <A Star Is Born (스타탄생,1954)> 이다. 술독에 빠진 한물간 스타와 성공을 꿈꾸는 신인 가수의 슬픈 사랑 이야기. (이 영화는 이후 바브라 스트라이센드와 레이디 가가에 의해 두번 더 리메이크 된다.)

  그녀는 엄청난 가창력, 무대 장악력과 연기력 삼박자를 고루 갖추며 재기하는 데에 성공해 아카데미상 여우주연상에 노미네이트 되었으나, 상은 그레이스 켈리에게 돌아갔다. 이 날은 수십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대표적인 아카데미상의 흑역사 중 하나로 거론되고 있다.

  이 영화에서 가장 유명한 곡, <The Man That Got Away> 를 감상해보자. 자그마한 체구에서 나오는 영혼을 전부 갈아넣은 듯한 묵직한 목소리가 인상적이다.

 

 

피날레가 인상적인

이정도면 영혼을 믹서기 정도가 아니라 맷돌로 갈아 넣은 것 같다.

 

  이후 갈란드는 종목(?)을 텔레비전 쇼로 갈아탔고, 자신의 이름을 건 <Judy Garland Show> 를 진행하며 인기를 누리는 듯 했으나, 이마저도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바브라 할머니 리즈 때 목소리가 이만큼 고왔다우

 

너무도 아름다운 모녀ㅠㅠㅠ 라이자 미넬리 할머니의 어린시절을 볼 수 있다.

 

프랭크시나트라 딘마틴 주디 미친 이게 머야ㅋㅋㅋㅋ 거의 윤복희 나훈아 조용필 조합인듯

 

무대에선 이렇게 열정적인 애너지를 뿜으며
많은 이들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해줬으나,
그녀는 계속되는 약물 중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1969년 자택에서 남편에 의해 사망한 채로 발견되었다.

 

 


 

 

내가 그녀를 사랑하는 이유

  그건 아마 그녀가 할리우드 뮤지컬 영화의 전성기(아니 MGM의 전성기겠지) 와 함께 호흡할 수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노래 실력은 물론이고 레뷔, 보드빌 등 다양한 공연 형태에 전부 탁월했고, 스크린과 브라운관 속에서도 엄청난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그러니 콜 포터, 조지 거쉰, 제롬 컨, 리처드 로저스 등 전설적인 작곡가들의 뮤지컬 넘버들을 소화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아니 뭐야.. 거장들 뮤지컬 한번씩 다 해본거잖아....

  두번째는 아마 그녀의 목소리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세월이라는게 참 야속한 것이, 많은 가수들이 나이가 들면 전성기 때 보다 못미치는 가창력을 보여주는 안타까운 경우를 보여주곤 한다. 반대로, 또 다른 가수들은 전성기 때와는 또 다른 음색으로 완전히 새로운 매력을 보여주는 경우도 많다. 주디 갈란드라면 후자에 속하는 것 같다. 나이에 비해서 성숙한 것 같기도 하면서 사랑스러움과 순수함이 잔뜩 묻어나는 초창기, 특별한 기교 없이도 맛깔나게 고운 전성기, 그리고 노래에 온갖 세월을 우려낸 듯한 말년기. 전부 다 좋다.

 

 

If happy little bluebirds fly beyond the rainbow. 
Why, oh, why can't I? 

행복한 파랑새들도 무지개 너머 날아가는데, 
왜 나는 그렇게 못하는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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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갈란드는 말년기에도 30년전 소녀 때 부른 Over The Rainbow 를 자주 열창하곤 했다. 아주 온 힘을 다해서,
대단한 명곡이니 만큼 부를 자리도 많았겠지만,
아마 그 가사 속에 본인의 진심이 담겨있었기 때문이었으리라고 생각해본다.

이 생에서는 쉬지 못했으니, 저 멀리 무지개 너머에선 부르고 싶은 노래 맘껏 부르며 편히 쉬길 바란다.

 

 

 실제 본인의 아들 딸과 함께한 노래. Judy Garland - Over The Rainbow (The Judy Garland Christmas Sh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