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카 생중계 보다가 발견한 보석 같은 영화. 기생충이 몇 관왕을 차지했을 때 이 영화는 조용히 각색상을 수상했던 걸로 기억한다.
이때 작품상 후보에는 두 개의 전쟁영화가 나란히 올라왔었는데 하나는 <1917>, 다른 하나는 이 영화 <조조 래빗>이었다. 둘 다 '전쟁'이라는 주제를 다뤘지만 색깔은 정말 달랐다. <1917>은 아직 보지 못했는데 작품성과는 별개로 그런 영화를 잘 못 본다. 집단의 비극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극한과 그 처절함을 눈으로 보는 게 정말 힘들다. 그래서 몇 년 전에 <덩케르크>랑 <인생은 아름다워>를 봤을 때도 감정 이입을 너무 심하게 해서 그 날 하루 종일 우울했던 기억이 있다.
근데 <조조 레빗>은 다르다. 2차 대전의 참상을 희극적으로 다뤘던 <인생은 아름다워>랑은 조금 결이 다른 유머가 가득했다. <인생은 아름다워>에선 아이를 살리기 위해 수용소에서 우스꽝스러운 짓을 했던 아버지의 희생이 돋보였다면 (그래서 내가 눈이 붓도록 펑펑 울고 그 영화를 다시는 못 보게 되었다면), <조조 래빗> 그거보단 한층 더 가볍다. 아아주 훨씬 가볍다!
그래도 여운은 지금까지 가시지 않는다. 인류 역사상 가장 처참했던 시기 속에서 피어난 여러 종류의 사랑, 아이의 시선을 통해 나치즘에 대한 날카롭고도 유쾌한 비판,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살아야 하는 이유와 희망을 웃기게 B급 갬성으로 잘 녹여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렇게 영화는 마치 엔딩 크레딧 직전 릴케의 시처럼 끔찍함과 아름다움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그렇기에 결말도 완전히 희극이나 비극으로 결론짓지 않았을지도. (근데 희극에 가깝다ㅋㅋㅋ)
본 사람마다 느낀 매력은 각자 다르겠지만, 이건 그냥 나 보려고... 기록 차원에서 아주 주관적으로... 내가 느낀 매력들만 간단하게 정리해보고자 한다.
-소년이기에 가능했던 풍자와 유머
영화<조조래빗>은 지독한 비극 투성이다. 나치즘 내에서 유대인은 물론 독일인도 겪을 수밖에 없었던 참상, 가족의 분열과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낼 수밖에 없는 현실 등 모든 게 비극 투성이다. 그런데 조조는 자신이 비극 한가운데 있다는 사실을 완벽히 직시하지 못한 씩씩하고 천진난만한 소년이다.
그렇기에 가슴 찢어지는 일을 겪고도 바로 다음 장면에서 아무렇지도 않은 모습으로 등장할 수 있지 않았을까? (그래서 장면이 자연스럽게 흘러가지 않고 뚝뚝 끊어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던 것일지도) 하여간 이 아이의 순수함 덕분에 중간중간에 웃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가슴은 너무 쫄깃하면서도 웃기긴 웃겨서 웃을 수밖에 없는 포인트들이 많았던 것 같다.
그러나, 나치즘은 모두의 비극이었다.
우리는 히틀러와 나치즘 하면 유대인의 희생을 가장 먼저 떠올린다. 그건 정말 변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렇지만 독일인들도 나치즘의 피해자였을 것이다.
(물론 나치즘에 감화하여 인종청소에 부역했던 사람들 제외. 그건.. 옹호할 가치가 없다) 로지 베츨러처럼 반 나치즘에 가담하다 발각되어 사형당한 독일인들, 본인의 신념을 제쳐두고 어쩔 수 없이 싸울 수밖에 없었던 (아까도 말했지만 괴벨스 같은 미친 전범자들 말고, 영화 속 클렌젠도르프 대위 같은) 독일 군인들과 민간인들, 그리고 뭣도 모르고 간지 나 보이니까 나치에 가담한 소년 소녀들.
"You’re not a Nazi, Jojo. You’re a ten year-old kid, who likes dressing up in a funny uniform and wants to be part of a club. But you are not one of them." 엘사의 대사에서 잘 드러나듯이, 나치는 소년들이라면 으레 느끼고 싶어 할 집단 내 소속감, 명예, 충성심을 자극하여 '히틀러 유겐트(Hitler-Jugend)'라는 홍위병스러운 조직을 만들어서 파시스트 꿈나무를 키워냈다. 조조도 히틀러 유겐트 소속으로 '할아버지가 금발이 아니었다는 걸 깨닫는 데까지 3주가 걸'렸고, 유대인이 진짜로 뿔 달린 마귀들이라는 걸 믿었던 걸 보면.. 가장 좋은 것들을 보고 선한 것을 교육받아야 할 때에 애들한테 무슨 짓거리를 한 거야. 영화에선 물론(?) 초반에 우스꽝스럽게 그려냈지만, 막판에 실제 이 곳 소속의 아이들이 총알받이가 되는 장면을 보면 정말이지 억장이 무너진다. 그렇게 <조조래빗>은 전쟁이 주는 모든 비극을 가감없이 드러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
뱃속에서 나비가 춤추는 것처럼 꿈틀거리는 설렘부터 목숨을 아끼지 않는 희생까지, <조조래빗> 속 사랑은 정말 여러 색깔로 존재했다. 그 어느 하나 덜 아름다운 사랑은 없었다. 그렇기에 이 끔찍한 전쟁영화가 우울하지 않고 눈부시게 빛날 수 있었던 것 같다. 감상을 마치고 이 구절을 묵상해보았다.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요한일서 4:18)
모든 등장인물의 사랑에는 두려움이 없었다. 만약에 누구 하나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었다면 이렇게 반짝이는 사랑을 경험할 수 없었을 것이다. 조조와 엘사가 각각 유대인에 나치에 대한 두려움을 깨지 못했다면 서로를 사랑할 수 없었을 것이고, 특히 조조는 짝사랑하는 엘사가 떠나는 것을 두려워했다면 종전 후에도 그녀를 놓아주지 않았을 것이다. 로지가 나치를 두려워했다면 가정과 엘사를 지켜내지 못했을뿐더러 자유 독일을 위해 싸우지 못했을 것이다. 두려움이 없었기에 클렌젠도르프 대위도 자신의 목숨을 아끼지 않고 조조를 지켰고, 요키와 조조는 두려움 없이 전장에서도 뜨겁게 포옹했다. (아니 이건 그냥 겁이 없었다고 생각하는 게 낫겠다. 이 둘은 아주 간땡이가 부었다.)
그렇기에 사랑을 실천하는 것은 단순한 감정을 초월한 의지적인 행위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나도 두려움을 극복하고 목숨을 내어줄 수 있을 만큼의 강렬한 사랑을 할 수 있을까? 내가 경험했던 사랑은 아직 너무 단조롭다. 다양한 사람들과 다양한 사랑을 경험할 수 있다면 정말 좋을 텐데. 나도 누군가에게 영화 속에 나온 모든 종류의 사랑을 보여주는 사람이 되고프다.
영화는 릴케의 시로 막을 내린다. 감정에는 끝이 없다지만, 그래도 그 끝자락에는 완전한 사랑이 꼭 남아있길 기도해본다.
마지막으로, 개인적으로 맘에 들었던 장면을 올려본다. 시청 기한이 지나 더 이상 볼 수 없는 조조 래빗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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